제가 비행시뮬레이션을 하고싶다고 생각한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 동안 특유의 절제력을 발휘해서 미루고 미뤄 왔었습니다. 학부생이라 딱히 바쁜.. 것은 아니지만, 제 성향이 무엇인가 하나에 푹 빠지면 끝까지 뽄때(?)를 보는 성격이라 참아야만 했던 것이지요.^^
무지 바쁘던 올해 상반기가 지나면서 대학원 전형이 끝나고 졸업작품도 끝나가고 학기도 끝나가고, 대학교 생활도 끝나가면서 상반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잉여로워졌습니다. 연중 크게 벌렸던 프로젝트들이 속속들이 끝나면서 '이제 뭐하지?' 라고 생각하던 중, 문득 저 뉴런의 골짜기 깊은곳에 숨어 있던 비행 시뮬에 대한 생각이 번뜩 하고 떠오른 것이지요.
사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건 방 안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며 조종할 수 있는 무인 항공기(UAV)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냥 RC비행기 같은 장난감이 아닌, 항공사진 촬영이나 물품 배달과 같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인 항공기 말이죠.
여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의 출발은 이러한 무인 항공기로부터였습니다. 항공기를 만들고는 싶은데, 비행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서는 안될 테니까요. (물론 게임은 게임이니 즐거운 취미로서 역할도 배제할 수 없겠죠.ㅎㅎ)
이렇게 여차저차 해서 비행 시뮬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필요한 아이템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있어야겠죠? 이건 해외배송이라 일찍 질러놔서 거의 한달 가까이 지나서 도착했습니다. 입문으로 선택한 비행 시뮬은 Falcon 4.0 Allied Force 입니다.
비행 시뮬 게임: Falcon 4.0 Allied Force
발칸반도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되는 캠페인 미션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실제 F-16을 조종하기 위한 매뉴얼이 잘 되어 있다고 해서 입문용으로 좋겠다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F-16의 기동을 물리 엔진을 통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재현하였으며, 조종석과 항전 장비, 미사일과 같은 무기 등은 실제와 98% 일치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2%는 군사 기밀때문에 구현되지 않은 부분입니다.
▲ Falcon 4.0 Allied Force
스로틀과 스틱: Saitek Pro Flight X-55 Rhino
비행 시뮬을 하는 데 이 장비들을 '필수'입니다. 굳이 하나만 선택 한다면, 스틱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특히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의 경우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미션들을 소화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Thrustmaster Worthog HOTAS를 구입하려 하였으나, 컴퓨터 한 대에 버금가는 가격에 식겁하고 중저가형 제품인 Saitek Pro Flight X-55 Rhino를 구입하였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출시된 제품인데, 마침 에이스알파( http://www.acealpha.com/ )에서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있길레 얼른 탑승해서 지금 판매중인 가격보다 약 5만원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 Saitek Pro Flight X-55 Rhino
오른쪽 스틱은 F-16에 장착된 스틱과 거의 유사하지만, 트리거가 2단이 아니라는 점과, 잡았을 때 엄지 부분에 닿는 스위치가 조이스틱 스위치가 아니라는 점이 다릅니다. 하지만, 마침 이 엄지 스위치가 군사 기밀인 관계로 게임에 구현이 안되어 있어서 저는 여기에 건 트리거 1단을 매핑시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페달은?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장비의 중요도를 따지자면 Stick > TrackIR > Throttle > Pedal 의 순서라고 합니다. Stick과 Throttle은 각각 방향과 추력을 제어하고, TrackIR은 시선을 제어합니다. 가장 중요도가 낮은 Pedal도 Stick과 마찬가지로 방향을 제어하지만, 그 중요도가 낮습니다.
저도 처음에 '페달이 왜 가장 덜 중요하지?' 라고 의문을 가졌으나, 직접 시뮬레이터를 플레이 해 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습니다.
페달은 보통 러더 페달(Rudder Pedal)이라 불리며, 이를 이용해서 수직 꼬리날개에 달린 러더(Rudder)를 제어합니다. 수직 꼬리날개에 달린 러더를 움직이면 항공기의 진행 방향이 좌/우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러더를 끝까지 움직이더라도 진행 방향이 바뀌는 정도가 아주 미미합니다. 즉, 러더만 사용해서 방향을 전환하려면 아주 큰 선회 반경을 그려야만 합니다.
따라서 선회를 하기 위해서는 러더를 쓰기보다는, 좌/우로 항공기를 기울이는 뱅크각을 준 다음 수평 꼬리날개(Elevator)를 이용해서 위(뱅크각을 줬으므로 결국 선회 하려는 방향이 됨)로 올라가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러더는 주로 착륙이나 순항을 할 때 진행 방향을 미세하게 수정하고자 할 경우에만 사용하며, 급선회가 요구되는 전투중에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장비의 우선순위로 따지면 하위가 되는 것이죠.
처음에는 페달도 구입하려고 했다가 꼭 필요한 장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중에 구입하기로 하였습니다. X-55 Rhino의 Stick을 좌/우로 돌려서(트위스트 러더) 러더 페달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TrackIR: FreeTrack + 자작 헤드기어
비행 시뮬레이션, 그 중에서도 특히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시선의 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 항공기라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면 되지만, 시뮬레이션의 경우 모니터 안에 시점이 갖혀있기 때문이죠.
빠르게 시선을 이동하기 위해 보통 Stick의 조이스틱 스위치를 하나 선택해서 시선 이동용(POV)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선을 이동하더라도 Dog Fight와 같은 급박한 공중전에서는 한계가 나타납니다. 적기가 시야(모니터)에서 사라지면 빨리 적기의 위치를 찾고 선회할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POV 스위치만 열심히 누르다가는 뒤에 뙇! 하고 나타난 상대방에게 격추당할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비행 시뮬에서는 TrackIR 이라고 하는 장비를 사용해서 시야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이게 뭐하는거냐면, 한마디로 말해서 고개를 돌리면 그 쪽으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시선을 바꿔 주는 장비입니다. 머리에 쓴 적외선을 발산하는 Head Gear를 전면의 적외선 카메라로 추적하는 원리인거죠.
전투 시뮬이라 페달은 없어라도 이건 꼭 있어야겠다 싶어서 구입하려고 찾아봤는데, 역시 가격이.. 해외구매라 세금과 배송비 등등을 합하면 대략 20만원정도입니다. OTL
적외선 카메라가 비싸서 그런지 본품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싼 가격 탓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약간의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대개 이 TrackIR 장비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적외선을 발산하는 Head Gear를 만들고, 웹캠을 살짝 손본 뒤 공개 프로그램인 FreeTrack과 연동하면 20만원에 달하는 TrackIR 장비를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죠.
이 장비를 만드는게 상당히 간단했기 때문에 저도 직접 제작했습니다. 이걸 머리에 쓰고 전원을 켠 뒤 FreeTrack을 실행하면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자작 TrackIR Head Gear
자작에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거라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너무 정밀해서 멀미가 오는 바람에 민감도를 낮추고 플레이 해야 했습니다.
So far... and next?
그렇게 해서 비행 시뮬을 하는 데 필요한 필수 장비는 모두 갖췄고, 700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은 전부 컬러 인쇄해서 파일에 철해두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현재 홈칵핏 상황입니다.
27인치 모니터가 두 개이고 시뮬에는 전면에 있는 하나만 사용하기 때문에 게임 도중에 설정 등을 바로 바꿀 수 있어 편리합니다. 홈칵핏이라고 했지만 사실 여긴 My home이 아니라 학교 기숙사입니다. [...]
이렇게 장비들을 갖추고 트레이닝 미션들을 하나씩 깨 나가는데, 처음에는 별 불편함이 없었지만 점점 복잡도가 올라가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사용하는 기능들이 점차 누적되면서 스로틀과 스틱에 있는 스위치들이 부족해지기 시작한것이죠.. 흐;;
비행 트레이닝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대공, 공대지 미션에 돌입하면서 MFD(Multi Function Display)라는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MFD는 조종석 정면 아래쪽에 있는 두 개의 모니터인데, 여러 가지 정보들을 표시하고 특히 레이더와 많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MFD 화면은 TrackIR을 이용해 시점을 돌리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MFD 주변에 달린 버튼들입니다. 이 버튼들을 이용해 레이더 모드 전환 등을 하는데, 이 때마다 키보드의 단축키를 누르거나 시점을 전환한 뒤 마우스로 클릭해야만 합니다.
좋은 해결책이 없을까 하고 다시 구글링을 하던 중, 이런걸 발견했습니다. [...]
▲ Thrustmaster MFD
실제 F-16의 MFD를 그대로 재현한 제품이라고 하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뭔가 허전합니다. 화면이 없죠. '이왕 있을거면 화면까지 같이 있어야지 왜 만들다 만거지?' 하고 그냥 닫았는데, 며칠 뒤 우연히 이걸 모니터에 붙여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한둘이 아니라, 이걸 구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모니터에 붙여서 사용하려면 정면에 있는 주모니터에 붙이는것은 별로 의미가 없으므로 다른 모니터에 붙여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실행중인 게임에서 MFD 화면을 추출해서 보조 모니터에 표시해야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정말 있더라구요...
https://www.assembla.com/code/lightningstools/subversion/nodes
여기에는 MFD 이미지 추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HUD나 다른 게이지는 물론 여러 기기의 상태들까지 추출해내는 프로그램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추출 프로그램을 오픈소스로 공개해서 커스터마이징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FreeTrack이나, MFDExtractor나 전부 양덕들의 작품입니다. 역시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
'대체 양덕들이 왜?' 라는 의문이 든다면, 직접 방문해 보세요.ㄷㄷ -> http://www.viperpits.org
물론 저는 저정도까지는 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바라지 않고, 버튼이 너무 많은 MFD만 좀 어떻게 편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MFDExtractor까지 발견하고 저 Thrustmaster MFD(정확히 말하면 MFD 배젤)을 구입할까 망설였는데, 결국 오늘 지르고 말았습니다. [...]
이왕 구입할거면 뒤에 LCD패널을 달아서 독립적으로 동작하게 만들자는 생각에 여러 차례 다시 생각했는데, 그런건 나중에 하더라도 집에서 놀고 있는 작은 모니터가 여러개 있으니 그 중 가장 비실한거 하나에 붙여서 일단 쫌 MFD 조작하기 편하게 만들자는 생각에 결국 구매버튼을 클릭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결제버튼을 클릭하며 한 생각: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거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지^-^
(그 다음은...??)